How-to-Write-a-Love-Letter

번역할 수 없는 고백 / Untranslatable Confession

ABC 에게,

I miss you.

내가 하고 싶은 말은 이게 다 입니다. 여기서 이 편지를 끝내도 내 뜻은 전달 될 것입니다. 그러나 이 세 단어는 당신에게 아무 의미가 없습니다. 당신에게는 세 단어가 아닌 당신이 단순히 이해하지 못하는 이상한 언어의 문자 배열로만 보일 테니까요.

하지만 당신의 언어로는 이 문장을 번역할 수 없습니다. 한국인들이 이 문장의 번역으로 흔히 사용하는 “보고 싶다”와 같은 느낌을 전달하지 않습니다. 특정 상황에서 수신인이 보고 싶은 사람의 삶의 존재가 없기 때문에 “I miss you”라는 말을 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보고 싶다”는 어디까지나 누군가가 보고 싶다는 바람 밖에 표현하지 않습니다.

그 바람은 여러 가지 이유에서 기인 할 수 있습니다. 나는 소꿉친구에게 “보고 싶다”라고 말 할 수 있습니다. 그 친구가 십여 년 동안 못 본 사이 얼마나 달라졌을지 궁금하니까요. 나는 엄마에게도 “보고 싶다”라고 말 할 수 있습니다. 최근에 머리를 자르신 엄마의 모습이 기대가 되니까요.

하지만 당신은 내 어린 시절 친구도, 나의 엄마도 아닙니다. 나는 호기심이라는 이유로도, 신이 난다는 이유로도 당신을 보고 싶지 않습니다. 당신이 어떻게 변했는지, 또 어떻게 그대로인지 보고 싶은 마음이 없습니다. “보고 싶다”라는 구절은 당신과 당신의 인생에만 초점을 두고, 당신이 없는 내 인생은 표현하지 않습니다.

내가 말하고 싶은 것은 내 인생에 대한 서술입니다. 난 그저 당신의 빈 공간이 느껴진다고 표현하기 위해 “I miss you” 라고 당신에게 말하고 싶습니다. 더 이상 당신의 목소리로 하루가 시작되지 않고, 당신의 짜증나는 버릇에 투정부릴 수도 없고, 맛이 없어도 맛있게 먹어줄 당신의 카레도 없고, 당신의 멍청한 농담에 웃어 줄 수도 없고, 당신의 오만하고도 순진한 그 아름다운 미소를 끝없이 바라볼 수도 없습니다. 당신은 더 이상 내 인생에 존재하지 않으며, 나는 그 빈자리를 의식합니다.

이게 내 인생입니다. 내 인생에 대해 표현하고 싶었습니다. 나는 당신과 당신의 인생에 대해 더 알고 싶다는 확언은 아직 못하겠습니다. 하지만 이 400자 편지도 세 단어 안에 함축되어있는 의미를 전달하지 못하는 것 같아 아쉬울 뿐입니다.

XYZ 올림

———————————————————————–

Dear ABC,

        I miss you.

That’s it. I could end my letter here and have my message delivered. But of course, those three words won’t make any sense to you. To you, they’re not three words; they’re simply an arrangement of strange looking characters of another language that you don’t understand.

But your language does not have a translation for the phrase. What Koreans use as an equivalent of “I miss you”—보고싶다—doesn’t quite convey this feeling. “보고싶다” means that I want to see you. In certain contexts, the addressees can conclude that the addressors want to see them because they no longer have a presence in the addressors’ lives. But in the end, the phrase itself is only an expression of desire: the desire of wanting to see the addressee.

That desire can originate from different reasons. I can say “보고싶다” to a childhood friend I haven’t seen in a decade as an expression that I’m curious how she changed and grew up since I last saw her. I can say “보고싶다” to my mom, who recently had her hair cut, as an expression that I’m excited for her new look.

But you’re not my childhood friend or my mom. I don’t want to see you for any of these reasons. I don’t want to see you because I’m curious or excited about how you’ve been. In fact, I don’t want to see you. I don’t think I’m ready to see you. I’m not ready to see how you’ve changed, or how you haven’t changed. The phrase focuses too much on you and your life, instead of the fact that you are missing from my life.

What I want to say is a statement about my life. I just want to say the simple message “I miss you”—that I notice your absence in my life. I no longer wake up to your voice or complain about your annoying habits or eat your bad curry that I pretend to like or laugh at your stupid jokes or beam endlessly at your stupid half-innocent, half-arrogant smile. You don’t have a presence in my life anymore, and I’m conscious of it.

That’s how my life has been. I’m not ready to make a statement of desire about whether or not I want to know more about yours.

But this 400-word letter does not even begin to capture what three words can.

Sincerely,

XYZ

 by Lydia Kim 

Photo Credit: globalgoodgrou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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